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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0:17
3월 말에 시작된 공사는 4월을 꼬박 채우더니
그도 모라자 5월까지 채울 기세다.
최초엔 4월 하순이면 가오픈을 하고
5월 초엔 정식 오픈을 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휴일을 발판삼아 상수동 외식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과연 5월 안에라도 정식 오픈을 할 지 두려움이 든다.
아직도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이번 주,
주방 닥트공사를 하고 무쇠솥을 올릴 부뚜막을 만들어야 한다.
닥트공사는 가까운 곳에 의뢰를 해놓은 상태니 그분이 알아서 하실꺼고
부뚜막은 내화벽돌과 시멘트 벽돌을 구입해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 앉힐 솥을 구입해야 하는데 탕국용 주물솥은 이미 구입했지만
오늘 청계천에 나가 한 치수 큰 걸로 교환할 생각이고
무쇠솥은 인터넷으로 주문할 계획이다.
무쇠솥은 제작하는 곳에 웃돈을 얹어주면 손수 길들이기를 해서 보내준다.
가게서 직접 길들이기를 하려면 이모저모 일이 커진다.
전문가들의 사진을 보니 가스통에 대형 토치를 연결해 기름 발라가며 오랜시간 태워주더라.
그래야 솥이 반들반들 윤이나고 오랜시간 써도 끄떡없는 무쇠솥으로 태어난다.
솥이 준비되면 그 사이즈에 맞춰 벽돌을 쌓아 부뚜막을 만든다.
사실 복잡할게 없는 작업이지만 불을 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뚜막의 폐열을
난방용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뭘지 고민인데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오픈시점을 자꾸 늦추게 만드는 주범에 하나다.
지난 겨울, 온기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던가?
자잘하게 남은 목공일도 마무리해야 하고
주방 바닥에 생긴 아주 미세한 크랙도 땜빵해야 한다. 그래야 물이 안새지.
살짝 걱정이 없지 않았는데 무거운 주방 집기들이 들어오면서
심한 충격이 갔는지 물청소를 하다가 크랙을 발견했다.
마른 상태에선 잘 안보이는데 그동안 쌓인 먼지를 물로 닦아내는 과정에서
미세한 먼지 흐름이 크랙을 따라 선을 만들어 모여 있는 발견하고서야 알았다.
이때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자칫 주방 바닥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하는건가 놀랐기 때문.
다행히 미세한 균열이어서 간단한 보수로 해결될 듯 싶다.
핸드 그라인더로 균열부분을 갈아 좀 더 큰 균열을 만들어낸 뒤
그 부분에 방수용 마감재를 채워주면 끝.
식당을 만들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대개 상가 건물을 올릴 때
식당용으로 처음부터 용도를 정하고 짓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체가 들어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고 시시때때로 입주업체가 바뀌기 때문.
기본적으로 식당은 물이 들고 나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배관을 깔고
그 위를 시멘트로 덮어 마무리하는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좀 높아진 그 바닥이 주방이 된다.
대개는 배관을 깔고 그 높이만큼을 자갈이나 모래로 채운 뒤 표면을 시멘트로 두텁게 발라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2층까지 그 무거운 것들을 지어 나르기가 너무 버거웠고
1층 슬라브 천정에 하중을 얹어주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해서 잔머리를 쓴게 압축 스티로폼을 잘라 10cm 간격으로 균일하게 깔아주고 그 사이에
모래와 남은 벽돌, 그 외 구조물이 될만한 이런저런 것들을 몽땅 채워넣었다. 심지어 쓰레기까지.
볼륨은 스티로폼이 잡고 바닥을 지탱하는 기둥역할은 모래와 벽돌, 쓰레기가 담당토록 한 것.
그렇게 마무리 된 표면 위로 사모래 50포대, 한 포대 무게가 40kg이니
총 2톤의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했다. 정석대로 했으면 크랙이 가는 일은 없었겠지만
2톤이 훌쩍 넘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 바닥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못해
걱정이 되는 일은 그래도 좀 줄어들었다.
최초엔 주방 바닥 미장도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는데
사모래 12포대 비비고서 뻗어버렸다. 이건 도무지..
해서 그길로 망원동으로 달려가 전문가를 초빙했고
총 3분이 오셨는데 남은 분량을 단 3시간만에 말끔하게 끝내시는 모습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본 뒤 돈 달라시는 대로 에누리없이 두 손 모아 드렸다.
그리고 털털 거리는 트럭을 몰고 떠나시는 그분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역시 고수야..
주방집기는 90%정도 들어왔다. 식기세척기와 김치냉장고만 들어오면 세팅은 끝.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냉면기계.
소품스럽게 느껴지는 주방기구들로 채워진 주방도 나름 아름답지만
진짜 선수들은 그런 팬시한 도구들이 아니고
냉면기계같은 육중한 기계들이라는게 내 생각.
그리스가 발라진 기름통을 끼고 220볼트 전기를 빨아당겨 만들어내는 유압의 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래옥이니 을밀대, 평양면옥 등은 그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30년 가까이 운영하다 문을 닫은 영진철물 사장님이
슬쩍 공사중인 가게에 올라와 구경하다 냉면기계를 보곤 자신의 젊었을 적을 잠시 회상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용산 용문동의 한 평양냉면집에서 일했는데
당시엔 저런 기계가 없으니 힘 좋은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 지렛대 식으로
반죽을 눌러 면을 뽑고 그걸 장작불이 훨훨 타는 가마솥에서 삶아냈단다.
지금은 엄두도 안나는 호랑이 담배시절 얘기다.
다른쪽 가마솥에선 밤새도록 고기국물을 끓여내고
불침번처럼 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고.
식당에서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긴 줄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그집 엄마는 아들 4명을 키워냈다는 뻔한 스토리로 종결.
그러면서 생각했다.
당시엔 영락없는 한우에 고기도 볏짚 따위를 먹여 키워 좋을 수 밖에 없고
음식에 별다른 장난질을 안쳤을테니 맛의 순수성은 정말 높았겠구나..
이땐 미원을 안썼을까?
미원이 아지노모토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해가 1908년.
국내에 미왕산업이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첫 상품을 내놓은게 딱 50년 후인 1958년이란다.
용문동에서 맹위를 떨치던 냉면집은 지금은 없다.
그때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때의 맛을 더듬어볼 뿐인 사람이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저 차디 찬 냉면기계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어제 15,000원 주고 머리를 깍았는데 완전히 깍두기를 만들어 놓았다.
10여년 전, 짧은 머리 이후로 처음이다. 그땐 의도한거지만 이번엔 아니다.
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 미용사, 사근거리는 말투로 내게 이런다.
"처음엔 좀 낯설겠지만 크림도 바르고 며칠 지나시면 익숙해지실꺼에요"
짐작컨데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원빈이 그 치렁치렁 거리던 머리를
바리깡으로 손수 밀어 만든 짧은 머리를 어쩌면 내 머리에도 똑같이 재연하려 했던가 아닐까?
결과는 원빈이 아니라 영구가 됐다.
저놈, 냉면기계에 넣어 레버를 당겨버릴까?
그도 모라자 5월까지 채울 기세다.
최초엔 4월 하순이면 가오픈을 하고
5월 초엔 정식 오픈을 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휴일을 발판삼아 상수동 외식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과연 5월 안에라도 정식 오픈을 할 지 두려움이 든다.
아직도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
이번 주,
주방 닥트공사를 하고 무쇠솥을 올릴 부뚜막을 만들어야 한다.
닥트공사는 가까운 곳에 의뢰를 해놓은 상태니 그분이 알아서 하실꺼고
부뚜막은 내화벽돌과 시멘트 벽돌을 구입해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 앉힐 솥을 구입해야 하는데 탕국용 주물솥은 이미 구입했지만
오늘 청계천에 나가 한 치수 큰 걸로 교환할 생각이고
무쇠솥은 인터넷으로 주문할 계획이다.
무쇠솥은 제작하는 곳에 웃돈을 얹어주면 손수 길들이기를 해서 보내준다.
가게서 직접 길들이기를 하려면 이모저모 일이 커진다.
전문가들의 사진을 보니 가스통에 대형 토치를 연결해 기름 발라가며 오랜시간 태워주더라.
그래야 솥이 반들반들 윤이나고 오랜시간 써도 끄떡없는 무쇠솥으로 태어난다.
솥이 준비되면 그 사이즈에 맞춰 벽돌을 쌓아 부뚜막을 만든다.
사실 복잡할게 없는 작업이지만 불을 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뚜막의 폐열을
난방용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뭘지 고민인데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오픈시점을 자꾸 늦추게 만드는 주범에 하나다.
지난 겨울, 온기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던가?
자잘하게 남은 목공일도 마무리해야 하고
주방 바닥에 생긴 아주 미세한 크랙도 땜빵해야 한다. 그래야 물이 안새지.
살짝 걱정이 없지 않았는데 무거운 주방 집기들이 들어오면서
심한 충격이 갔는지 물청소를 하다가 크랙을 발견했다.
마른 상태에선 잘 안보이는데 그동안 쌓인 먼지를 물로 닦아내는 과정에서
미세한 먼지 흐름이 크랙을 따라 선을 만들어 모여 있는 발견하고서야 알았다.
이때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자칫 주방 바닥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하는건가 놀랐기 때문.
다행히 미세한 균열이어서 간단한 보수로 해결될 듯 싶다.
핸드 그라인더로 균열부분을 갈아 좀 더 큰 균열을 만들어낸 뒤
그 부분에 방수용 마감재를 채워주면 끝.
식당을 만들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대개 상가 건물을 올릴 때
식당용으로 처음부터 용도를 정하고 짓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체가 들어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고 시시때때로 입주업체가 바뀌기 때문.
기본적으로 식당은 물이 들고 나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배관을 깔고
그 위를 시멘트로 덮어 마무리하는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좀 높아진 그 바닥이 주방이 된다.
대개는 배관을 깔고 그 높이만큼을 자갈이나 모래로 채운 뒤 표면을 시멘트로 두텁게 발라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2층까지 그 무거운 것들을 지어 나르기가 너무 버거웠고
1층 슬라브 천정에 하중을 얹어주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해서 잔머리를 쓴게 압축 스티로폼을 잘라 10cm 간격으로 균일하게 깔아주고 그 사이에
모래와 남은 벽돌, 그 외 구조물이 될만한 이런저런 것들을 몽땅 채워넣었다. 심지어 쓰레기까지.
볼륨은 스티로폼이 잡고 바닥을 지탱하는 기둥역할은 모래와 벽돌, 쓰레기가 담당토록 한 것.
그렇게 마무리 된 표면 위로 사모래 50포대, 한 포대 무게가 40kg이니
총 2톤의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했다. 정석대로 했으면 크랙이 가는 일은 없었겠지만
2톤이 훌쩍 넘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 바닥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못해
걱정이 되는 일은 그래도 좀 줄어들었다.
최초엔 주방 바닥 미장도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는데
사모래 12포대 비비고서 뻗어버렸다. 이건 도무지..
해서 그길로 망원동으로 달려가 전문가를 초빙했고
총 3분이 오셨는데 남은 분량을 단 3시간만에 말끔하게 끝내시는 모습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본 뒤 돈 달라시는 대로 에누리없이 두 손 모아 드렸다.
그리고 털털 거리는 트럭을 몰고 떠나시는 그분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역시 고수야..
주방집기는 90%정도 들어왔다. 식기세척기와 김치냉장고만 들어오면 세팅은 끝.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냉면기계.
소품스럽게 느껴지는 주방기구들로 채워진 주방도 나름 아름답지만
진짜 선수들은 그런 팬시한 도구들이 아니고
냉면기계같은 육중한 기계들이라는게 내 생각.
그리스가 발라진 기름통을 끼고 220볼트 전기를 빨아당겨 만들어내는 유압의 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래옥이니 을밀대, 평양면옥 등은 그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30년 가까이 운영하다 문을 닫은 영진철물 사장님이
슬쩍 공사중인 가게에 올라와 구경하다 냉면기계를 보곤 자신의 젊었을 적을 잠시 회상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용산 용문동의 한 평양냉면집에서 일했는데
당시엔 저런 기계가 없으니 힘 좋은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 지렛대 식으로
반죽을 눌러 면을 뽑고 그걸 장작불이 훨훨 타는 가마솥에서 삶아냈단다.
지금은 엄두도 안나는 호랑이 담배시절 얘기다.
다른쪽 가마솥에선 밤새도록 고기국물을 끓여내고
불침번처럼 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고.
식당에서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긴 줄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그집 엄마는 아들 4명을 키워냈다는 뻔한 스토리로 종결.
그러면서 생각했다.
당시엔 영락없는 한우에 고기도 볏짚 따위를 먹여 키워 좋을 수 밖에 없고
음식에 별다른 장난질을 안쳤을테니 맛의 순수성은 정말 높았겠구나..
이땐 미원을 안썼을까?
미원이 아지노모토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해가 1908년.
국내에 미왕산업이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첫 상품을 내놓은게 딱 50년 후인 1958년이란다.
용문동에서 맹위를 떨치던 냉면집은 지금은 없다.
그때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때의 맛을 더듬어볼 뿐인 사람이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저 차디 찬 냉면기계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어제 15,000원 주고 머리를 깍았는데 완전히 깍두기를 만들어 놓았다.
10여년 전, 짧은 머리 이후로 처음이다. 그땐 의도한거지만 이번엔 아니다.
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 미용사, 사근거리는 말투로 내게 이런다.
"처음엔 좀 낯설겠지만 크림도 바르고 며칠 지나시면 익숙해지실꺼에요"
짐작컨데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원빈이 그 치렁치렁 거리던 머리를
바리깡으로 손수 밀어 만든 짧은 머리를 어쩌면 내 머리에도 똑같이 재연하려 했던가 아닐까?
결과는 원빈이 아니라 영구가 됐다.
저놈, 냉면기계에 넣어 레버를 당겨버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