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에 해당되는 글 5건
2009/10/31 22:17
포스팅을 못하면 노트에 짧막하게 일기라도 쓰곤 하는데
인테리어 공사가 본격 시작된 후로 그마저 건너뛴지 며칠이 됐다.
일은 전문가들이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을 지키고
정리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래저래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별로 한 일도 없건만 몸은 파김치가 된다.
대체 공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연 가게문을 열기는 여는건지
현장 사진이라도 좀 올리면 좋겠건만
이 짧은 포스팅조차도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내일은 오전중으로 목수팀의 작업이 끝날 예정이고
을지로에서 페인트를 사오면 오후부터 천정과 벽을 바를 예정이다.
페인트는 우리가 직접 칠한다.
동참하고 싶은 이들은 작업복 하나 챙겨들고 오라.
인테리어 공사가 본격 시작된 후로 그마저 건너뛴지 며칠이 됐다.
일은 전문가들이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을 지키고
정리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래저래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별로 한 일도 없건만 몸은 파김치가 된다.
대체 공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연 가게문을 열기는 여는건지
현장 사진이라도 좀 올리면 좋겠건만
이 짧은 포스팅조차도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내일은 오전중으로 목수팀의 작업이 끝날 예정이고
을지로에서 페인트를 사오면 오후부터 천정과 벽을 바를 예정이다.
페인트는 우리가 직접 칠한다.
동참하고 싶은 이들은 작업복 하나 챙겨들고 오라.
2009/10/22 16:16
인테리어 공사 시작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월요일에서야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될 것 같다는 것이
공사 관계자분들의 이야기.
쫓기는 기분과 초조함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10개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서는 과정이 창업이라면 이제 겨우 한 고개를 넘었을 뿐이건만
아침마다 머리감을 때 뽑혀나오는 머리카락 수는 당최 줄지를 않는다.
문 열때쯤엔 대머리가 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태산인데
더 큰 걱정은 역시 식당의 안착여부.
철물점이 이사하며 남기고 간 묵은 먼지에 더해 그간 인테리어 협의차, 또는 격려차
방문한 여러 인사들의 담배꽁초와 빈 술병을 마냥 방치하다가 오늘 깨끗히 쓸어냈다.
공사가 좀 늦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들도 또한 많은 만큼
좀 정리된 바닥에서 구상에 집중하려고.
+++
왕산건재는 이 자리에서 7년간 장사를 했다고 하니 지난 2003년에 문을 연 셈이다.
우연히도 같은 해 가을무렵 우리는 서교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좀 더 저렴한 공간을 찾아
이곳 철물점과 불과 100미터 인근에 사무실을 열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곳 철물점에서 몇 번 자잘한 물건들을 구입했던 것도 같다.
철물점은 아저씨가 2.5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줌마는 안에서 TV를 보며 철물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인데
가게를 내놓는 이유는 아줌마의 건강이 안좋아진 탓이라고.
상인과 상인과의 대화에서 역시 본론은 권리금 문제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랑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권리금 10%라도 좀 깎아보려 했지만 양보가 없었다.
쇠약한 아줌마의 힘없는 목소리,
현장의 잔뼈가 굵은 아저씨의 30%는 해독이 안되는 빠르면서 새는 말투,
대화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방법을 고민하다가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얘길 건네고 잠시 냉각기를 두기로 했다.
우리가 좀 뜸을 들이면 철물점측에서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까 했던 것.
그러던 중 어느날 연락이 왔고 아줌마가 얘길 건넸다.
"어떻게, 계약 할꺼에요?
지금 다른 부동산이 손님 데리고 가게보러 왔거든요"
이런..
우리가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약 할겁니다. 제가 오후에 곧바로 가게로 갈께요"
+++
좀 더 버티면 더 좋은 수가 났을까?
알 수 없지만 홍대, 또는 이른바 'HOT 상권'에 해당되는 곳은
마땅히 '권리'라고 내세울게 없어도 단지 그 자리에 점포를 깔고 앉았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 아닌 권리금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른바 '바닥피', 또는 '멍석피'.
우리가 그 돈을 지불한 셈인데 불합리한 관행에 맞서 정의를 바로세우려는 것이
장사의 목적이 아닌 이상 이에 맞설 방법은 없다.
이곳에서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김밥, 또는 꽃을 팔고 있는
허름한 점포의 경우 단지 큰 길가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이 5천에 이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권리금과 관련해 하나 덧붙이면
홍대, 정확히는 서교동 일대에서 독특한 스타일로
와인의 맛과 멋을 선보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모 카페가 가게를 털고
우리 식당과 멀지 않은 곳에 새롭게 자리를 마련중이다. (식사메뉴로 뭘 낼지 몹시 궁금..)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 건물주인의 딸이 그 자리를 탐내 결국 가게를 나오게 됐다는데
문제는 건물주인에게 가게를 돌려주는 것이므로 권리금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한푼의 권리금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떠도는 풍문.
가게를 내고 보니 이런식의 '업계 소식'도 들리는 것이 참으로 기분 묘하면서도
그게 사실이라면 결코 남의 사정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
인테리어 디자인, 내장재, 조명, 출입구,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각종 주방기구들.
장사를 위한 필수요소들의 신상명세가 대부분 결정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 하나가 아직도 해결이 안나고 있으니
바로 '가게 이름'이다.
이름이 나와야 사업자등록증도 교부받을 수 있고
홍보전략도 세울 수 있고 하다못해 명함이라도 만들 수 있다.
해서 어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작정을 하고 이름에 대해 몰입했는데
좋은 소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보 몇 개가 추려졌다.
본 죠르노 (Buon jiorno)
알로라 (Allora)
쁘레고 (Prego)
꼬메바 (Come va)
모두 이탈리아 말들인데 본 죠르노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싶고,
참고로 저녁인사는 보나세라 (Buona sera).
알로라 (Allora)는 이탈리아에서 길거리건 TV건 어디서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화중 한 단락을 마치고 다음 단락을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를 때나
말문을 열기 직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일종의 말의 추임새다.
가령,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 (한 숨 쉬고)
알 로 ~라
(그리고 다시)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다"
쁘레고(Prego)는 '천만에요' 또는 '별말씀을'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지만
이 외에도 쓰임이 광범위한 만능의 말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버스에 오르다 상대방에게 양보할 때 가볍게 웃어보이며
"쁘레고"
웨이터가 손님에게 주문을 주문받기 전 가볍게 한 마디
"쁘레고"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하며
"쁘레고"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 대답 역시
"쁘레고"
최근에 대형 마트에서 가보니 깡통음식을 만드는 미국 Cambell사의
파스타용 토마토 소스의 제품 이름이
쁘레고(Prego) 더라는..
꼬메바 (Come va)는 지인들 간의 가벼운 인사.
"어떻게 지내?" 혹은 "잘 지내?" 정도.
헌데 서교동쪽에 보니 '꼬메스따 (Come sta)'라고 해서
같은 뜻을 가진 와인바가 있더라는.
해서 이건 제외될 듯.
세 글자 이름이 발음상 좋다는 압도적 지지아래
몇 분은 다른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따볼리노 디 상수 (Tavolino di 상수) - 상수동의 작은 테이블
이라거나 또는
꼬메 우나 볼타 (Come una volta) - Once upon a time
라는 제안도 있었다.
심지어
마피아(Mafia) 도.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번주말 안으로는 이름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아무래도 월요일에서야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될 것 같다는 것이
공사 관계자분들의 이야기.
쫓기는 기분과 초조함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10개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서는 과정이 창업이라면 이제 겨우 한 고개를 넘었을 뿐이건만
아침마다 머리감을 때 뽑혀나오는 머리카락 수는 당최 줄지를 않는다.
문 열때쯤엔 대머리가 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태산인데
더 큰 걱정은 역시 식당의 안착여부.
철물점이 이사하며 남기고 간 묵은 먼지에 더해 그간 인테리어 협의차, 또는 격려차
방문한 여러 인사들의 담배꽁초와 빈 술병을 마냥 방치하다가 오늘 깨끗히 쓸어냈다.
공사가 좀 늦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들도 또한 많은 만큼
좀 정리된 바닥에서 구상에 집중하려고.
+++
왕산건재는 이 자리에서 7년간 장사를 했다고 하니 지난 2003년에 문을 연 셈이다.
우연히도 같은 해 가을무렵 우리는 서교동 사무실을 정리하고 좀 더 저렴한 공간을 찾아
이곳 철물점과 불과 100미터 인근에 사무실을 열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곳 철물점에서 몇 번 자잘한 물건들을 구입했던 것도 같다.
철물점은 아저씨가 2.5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줌마는 안에서 TV를 보며 철물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인데
가게를 내놓는 이유는 아줌마의 건강이 안좋아진 탓이라고.
상인과 상인과의 대화에서 역시 본론은 권리금 문제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랑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권리금 10%라도 좀 깎아보려 했지만 양보가 없었다.
쇠약한 아줌마의 힘없는 목소리,
현장의 잔뼈가 굵은 아저씨의 30%는 해독이 안되는 빠르면서 새는 말투,
대화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방법을 고민하다가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얘길 건네고 잠시 냉각기를 두기로 했다.
우리가 좀 뜸을 들이면 철물점측에서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까 했던 것.
그러던 중 어느날 연락이 왔고 아줌마가 얘길 건넸다.
"어떻게, 계약 할꺼에요?
지금 다른 부동산이 손님 데리고 가게보러 왔거든요"
이런..
우리가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계약 할겁니다. 제가 오후에 곧바로 가게로 갈께요"
+++
좀 더 버티면 더 좋은 수가 났을까?
알 수 없지만 홍대, 또는 이른바 'HOT 상권'에 해당되는 곳은
마땅히 '권리'라고 내세울게 없어도 단지 그 자리에 점포를 깔고 앉았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 아닌 권리금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른바 '바닥피', 또는 '멍석피'.
우리가 그 돈을 지불한 셈인데 불합리한 관행에 맞서 정의를 바로세우려는 것이
장사의 목적이 아닌 이상 이에 맞설 방법은 없다.
이곳에서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김밥, 또는 꽃을 팔고 있는
허름한 점포의 경우 단지 큰 길가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권리금이 5천에 이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권리금과 관련해 하나 덧붙이면
홍대, 정확히는 서교동 일대에서 독특한 스타일로
와인의 맛과 멋을 선보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모 카페가 가게를 털고
우리 식당과 멀지 않은 곳에 새롭게 자리를 마련중이다. (식사메뉴로 뭘 낼지 몹시 궁금..)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 건물주인의 딸이 그 자리를 탐내 결국 가게를 나오게 됐다는데
문제는 건물주인에게 가게를 돌려주는 것이므로 권리금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한푼의 권리금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떠도는 풍문.
가게를 내고 보니 이런식의 '업계 소식'도 들리는 것이 참으로 기분 묘하면서도
그게 사실이라면 결코 남의 사정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
인테리어 디자인, 내장재, 조명, 출입구,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각종 주방기구들.
장사를 위한 필수요소들의 신상명세가 대부분 결정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 하나가 아직도 해결이 안나고 있으니
바로 '가게 이름'이다.
이름이 나와야 사업자등록증도 교부받을 수 있고
홍보전략도 세울 수 있고 하다못해 명함이라도 만들 수 있다.
해서 어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작정을 하고 이름에 대해 몰입했는데
좋은 소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보 몇 개가 추려졌다.
본 죠르노 (Buon jiorno)
알로라 (Allora)
쁘레고 (Prego)
꼬메바 (Come va)
모두 이탈리아 말들인데 본 죠르노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싶고,
참고로 저녁인사는 보나세라 (Buona sera).
알로라 (Allora)는 이탈리아에서 길거리건 TV건 어디서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화중 한 단락을 마치고 다음 단락을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를 때나
말문을 열기 직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일종의 말의 추임새다.
가령,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 (한 숨 쉬고)
알 로 ~라
(그리고 다시) 어쩌구저쩌구 다다다다다다"
쁘레고(Prego)는 '천만에요' 또는 '별말씀을'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지만
이 외에도 쓰임이 광범위한 만능의 말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버스에 오르다 상대방에게 양보할 때 가볍게 웃어보이며
"쁘레고"
웨이터가 손님에게 주문을 주문받기 전 가볍게 한 마디
"쁘레고"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하며
"쁘레고"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 대답 역시
"쁘레고"
최근에 대형 마트에서 가보니 깡통음식을 만드는 미국 Cambell사의
파스타용 토마토 소스의 제품 이름이
쁘레고(Prego) 더라는..
꼬메바 (Come va)는 지인들 간의 가벼운 인사.
"어떻게 지내?" 혹은 "잘 지내?" 정도.
헌데 서교동쪽에 보니 '꼬메스따 (Come sta)'라고 해서
같은 뜻을 가진 와인바가 있더라는.
해서 이건 제외될 듯.
세 글자 이름이 발음상 좋다는 압도적 지지아래
몇 분은 다른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따볼리노 디 상수 (Tavolino di 상수) - 상수동의 작은 테이블
이라거나 또는
꼬메 우나 볼타 (Come una volta) - Once upon a time
라는 제안도 있었다.
심지어
마피아(Mafia) 도.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번주말 안으로는 이름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현재 살고있는 집이 강동구 상일동과 의정부로 각각 갈라져 가족집에 얹혀 있는 실정이라
이래저래 어려운점이 있는데 장사를 본격 시작하면 출퇴근이 엄청 힘들어질 것 같다.
해서 가까운 곳에 잠만 잘 수 있는 고시텔 따위를 알아볼까 한다.
일산 살던 시절, 지인들에게 술과 밥과 잠을 모두 해결해줬지만
당분간 잠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술과 밥이 근사해지니 그게 어디냐!
이래저래 어려운점이 있는데 장사를 본격 시작하면 출퇴근이 엄청 힘들어질 것 같다.
해서 가까운 곳에 잠만 잘 수 있는 고시텔 따위를 알아볼까 한다.
일산 살던 시절, 지인들에게 술과 밥과 잠을 모두 해결해줬지만
당분간 잠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술과 밥이 근사해지니 그게 어디냐!
2009/10/22 00:31
(얼마나 성실하게 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정식 오픈일까지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요약해 정리해두려 한다)
잿빛의 시멘트살을 드러낸, 지금은 볼품없는 공간이지만 이제 며칠 후면
푸근한 불빛과 구수한 음식냄새가 가득 넘치는 식당으로 변모하게 될 곳.
채 10평이 안되는 이 작은 공간까지 오는데는 적어도 1년 반이 걸렸다.
작년 3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년간 살던 오피스텔도 정리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챙겨 지중해로 훌쩍 날아갔다.
요리를 배울 생각이었지만 젤 먼저 배운것은 영어였고 이를 위해 도착한 곳은 섬나라 몰타.
시칠리아와 가까워 기후와 삶의 감성은 이탈리아를 닮은 반면
한때 영국 식민지여서 그 나라의 제도가 곳곳에 베어 있는 이곳에서
6개월간 지내며 결과적으로 수영만 배웠다.
40평짜리 집을 헐값(한국과 비교해)에 임대해줬던 주인과 작별을 고하고
드디어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그게 작년 9월 말.
제법 부촌이라는 베로나를 시작으로 밀라노, 베르가모, 토리노, 베네치아, 피렌체, 뻬루쟈 등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얘기하고 얻어먹고 요리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품었던 파스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시간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어줍잖은 환상은 김빠진 카스처럼 꺼져갔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없이 아쉬워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다 아는 얘기
+++
식당 창업에 앞서 서툰 실력을 좀 다듬어 볼 요량으로
한동안 요리학원을 다녔다. 사실은 가구 및 소규모 인테리어 기술을 배워
식당 내부를 직접 꾸며 인테리어비를 아껴보려는 욕심이 큰 동기였는데
나라에서 거의 공짜로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는 곳은 경상남도까지 내려가야 해서 포기했다.
결국 몇 군데 요리학원을 골라 한곳을 선택했는데(역시 거의 공짜)
교육내용에 실망만 하고 한 달만에 집어 치웠다.
이것도 대략 아는 이야기.
다만 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과제빵과정을 선택해 수강중인 강양은
비교적 잘 짜여진 커리큘럼과 성실한 학원측의 교육으로
그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해가고 있다.
(코딱지 만한 가게지만 직접 식사빵을 내는 식의 고집과 자부심은 우리의 최대 덕목)
+++
이탈리아로 떠나기전 살았던 동네가 일산.
한 4년 살다보니, 특히 주말마다 상권을 휘젖고 다니며 밥먹고 술마시다 보니
나름 자리를 보는 안목이 생겼고 그 확신을 믿고 처음엔 일산쪽에 가게터를 알아봤었다.
서울보단 아무래도 저렴하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웬걸,
서울 뺨치는 가격이다.
15평 채 안되는 공간이 권리금 4천만원에 보증금 2천, 월세 150.
유사업종 포화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치열한 이곳의 가게세가 이렇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럼에도 보름이 멀다하고 새로운 가게가 간판만 바꿔달며 오픈하는 모습 또한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다.
망해가는 고깃집을 보여준 어느 부동산 아줌마와의 재밌었던 대화 한 토막,
"무슨 식당 하시려고?"
"음.. 양식당이에요"
"아~ 돈까쓰. 이 골목에 그거 하면 참 잘될꺼에요. 여기에 돈까스집이 없어"
"아 네.."
ㅋㅋㅋ
보신탕집이라고 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꺼라는건 두 말하면 잔소리.
몇 군데 더 알아봤지만 기대를 건 일산은 결코 싸지 않았다.
서울에 비해 역시 유행이나 그 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살기좋은 환경을 갖췄고 4년간 재밌었던 추억의 흔적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이곳에 당장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버스로 빠져나오면서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직사광선이 무척이나 뜨겁던 여름 어느날 오후에 홍대 일대의 부동산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리고 며칠을 더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이곳.
"요 옆에 가면 철물점 있어요. 거기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몇 평에 얼만가요?"
"10평이 안되는데 권리금 2천에 보증금 1천, 월세 1백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저희는 식당할껀데 철물점에서 권리금을 받나요?"
"지난 번에도 어떤 사람이 소주집을 하겠다면서 1천5백을 제시했는데 돌려 보냈죠"
"그렇군요.. 가게를 볼 수 있나요?"
"그냥 지나가면서 밖에서 슬쩍 보세요"
지나가면서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잡다한 철물재가 두서없이 쌓여있고 그 너머로 한창 TV를 보고 있는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물건이 가득 들어차서인지 가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좁아보였다.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에게선 어떤 괴팍함,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은근히 느껴졌다.
그나마 위안은 철물점 바로 옆 같은 평수에서 장사를 막 시작한 작은 북카페였는데
같은 평수와 공간이라고 하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립본 결과 사이즈가 나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장 자금을 확보한 것도 아니건만
이미 철물점은 우리꺼라는 애착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
이후의 과정이 궁금한 이들은 나중에 가게에 오셔서 들으시길..
다만 지금 현재까지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하면,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일부 벽을 털고 바닥을 높이고 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야 하므로
이를 위한 도면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고 목요일 중으로 마무리되면
금요일부터는 망치질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다.
주방기구는 제품과 구매단가 확인작업이 약 80% 정도 마무리됐고
중앙시장에서 가격을 잘 뽑아 줄 업체만 만나면 될 듯.
어제 용두동의 한 제과제빵기계업체를 찾아 매장에 전시된 오븐을 뒤졌는데
스페인제 중고 오븐을 점찍어 뒀다. 300만원.
380V의 3상 전기를 사용하므로 전기증설은 기본이고 그 비용만도 얼추 100만원이 넘을 듯 싶다.
일반 가정에 기본 공급하는 전기용량이 5Kw라는데 저 오븐만 최대 12Kw.
결국 적어도 20Kw까지는 증설을 해야하는 상황.
디테일한 내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각종 집기를 들여놓을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내주 중반 이후가 될 듯.
금요일 저녁에는 주방에서 불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상의 오픈일이 아닐까?^^)
볼로냐에서 만난 최경준君이 내년 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돕기로 했다.
그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쉐프 마르코 파디가의 두터운 신임아래
2년간 요리를 배운 경준이는 올 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젠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주 지긋지긋해요"
비록 짧으나마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은 지긋지긋하지 말아야 할텐데..
(창업일기는 계속..)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요약해 정리해두려 한다)
잿빛의 시멘트살을 드러낸, 지금은 볼품없는 공간이지만 이제 며칠 후면
푸근한 불빛과 구수한 음식냄새가 가득 넘치는 식당으로 변모하게 될 곳.
채 10평이 안되는 이 작은 공간까지 오는데는 적어도 1년 반이 걸렸다.
작년 3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년간 살던 오피스텔도 정리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챙겨 지중해로 훌쩍 날아갔다.
요리를 배울 생각이었지만 젤 먼저 배운것은 영어였고 이를 위해 도착한 곳은 섬나라 몰타.
시칠리아와 가까워 기후와 삶의 감성은 이탈리아를 닮은 반면
한때 영국 식민지여서 그 나라의 제도가 곳곳에 베어 있는 이곳에서
6개월간 지내며 결과적으로 수영만 배웠다.
40평짜리 집을 헐값(한국과 비교해)에 임대해줬던 주인과 작별을 고하고
드디어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그게 작년 9월 말.
제법 부촌이라는 베로나를 시작으로 밀라노, 베르가모, 토리노, 베네치아, 피렌체, 뻬루쟈 등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얘기하고 얻어먹고 요리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품었던 파스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시간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어줍잖은 환상은 김빠진 카스처럼 꺼져갔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없이 아쉬워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다 아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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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창업에 앞서 서툰 실력을 좀 다듬어 볼 요량으로
한동안 요리학원을 다녔다. 사실은 가구 및 소규모 인테리어 기술을 배워
식당 내부를 직접 꾸며 인테리어비를 아껴보려는 욕심이 큰 동기였는데
나라에서 거의 공짜로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는 곳은 경상남도까지 내려가야 해서 포기했다.
결국 몇 군데 요리학원을 골라 한곳을 선택했는데(역시 거의 공짜)
교육내용에 실망만 하고 한 달만에 집어 치웠다.
이것도 대략 아는 이야기.
다만 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과제빵과정을 선택해 수강중인 강양은
비교적 잘 짜여진 커리큘럼과 성실한 학원측의 교육으로
그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해가고 있다.
(코딱지 만한 가게지만 직접 식사빵을 내는 식의 고집과 자부심은 우리의 최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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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떠나기전 살았던 동네가 일산.
한 4년 살다보니, 특히 주말마다 상권을 휘젖고 다니며 밥먹고 술마시다 보니
나름 자리를 보는 안목이 생겼고 그 확신을 믿고 처음엔 일산쪽에 가게터를 알아봤었다.
서울보단 아무래도 저렴하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웬걸,
서울 뺨치는 가격이다.
15평 채 안되는 공간이 권리금 4천만원에 보증금 2천, 월세 150.
유사업종 포화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치열한 이곳의 가게세가 이렇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럼에도 보름이 멀다하고 새로운 가게가 간판만 바꿔달며 오픈하는 모습 또한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다.
망해가는 고깃집을 보여준 어느 부동산 아줌마와의 재밌었던 대화 한 토막,
"무슨 식당 하시려고?"
"음.. 양식당이에요"
"아~ 돈까쓰. 이 골목에 그거 하면 참 잘될꺼에요. 여기에 돈까스집이 없어"
"아 네.."
ㅋㅋㅋ
보신탕집이라고 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꺼라는건 두 말하면 잔소리.
몇 군데 더 알아봤지만 기대를 건 일산은 결코 싸지 않았다.
서울에 비해 역시 유행이나 그 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살기좋은 환경을 갖췄고 4년간 재밌었던 추억의 흔적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이곳에 당장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버스로 빠져나오면서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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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직사광선이 무척이나 뜨겁던 여름 어느날 오후에 홍대 일대의 부동산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리고 며칠을 더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이곳.
"요 옆에 가면 철물점 있어요. 거기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몇 평에 얼만가요?"
"10평이 안되는데 권리금 2천에 보증금 1천, 월세 1백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저희는 식당할껀데 철물점에서 권리금을 받나요?"
"지난 번에도 어떤 사람이 소주집을 하겠다면서 1천5백을 제시했는데 돌려 보냈죠"
"그렇군요.. 가게를 볼 수 있나요?"
"그냥 지나가면서 밖에서 슬쩍 보세요"
지나가면서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잡다한 철물재가 두서없이 쌓여있고 그 너머로 한창 TV를 보고 있는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물건이 가득 들어차서인지 가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좁아보였다.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에게선 어떤 괴팍함,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은근히 느껴졌다.
그나마 위안은 철물점 바로 옆 같은 평수에서 장사를 막 시작한 작은 북카페였는데
같은 평수와 공간이라고 하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립본 결과 사이즈가 나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장 자금을 확보한 것도 아니건만
이미 철물점은 우리꺼라는 애착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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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과정이 궁금한 이들은 나중에 가게에 오셔서 들으시길..
다만 지금 현재까지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하면,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일부 벽을 털고 바닥을 높이고 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야 하므로
이를 위한 도면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고 목요일 중으로 마무리되면
금요일부터는 망치질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다.
주방기구는 제품과 구매단가 확인작업이 약 80% 정도 마무리됐고
중앙시장에서 가격을 잘 뽑아 줄 업체만 만나면 될 듯.
어제 용두동의 한 제과제빵기계업체를 찾아 매장에 전시된 오븐을 뒤졌는데
스페인제 중고 오븐을 점찍어 뒀다. 300만원.
380V의 3상 전기를 사용하므로 전기증설은 기본이고 그 비용만도 얼추 100만원이 넘을 듯 싶다.
일반 가정에 기본 공급하는 전기용량이 5Kw라는데 저 오븐만 최대 12Kw.
결국 적어도 20Kw까지는 증설을 해야하는 상황.
디테일한 내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각종 집기를 들여놓을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내주 중반 이후가 될 듯.
금요일 저녁에는 주방에서 불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상의 오픈일이 아닐까?^^)
볼로냐에서 만난 최경준君이 내년 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돕기로 했다.
그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쉐프 마르코 파디가의 두터운 신임아래
2년간 요리를 배운 경준이는 올 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젠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주 지긋지긋해요"
비록 짧으나마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은 지긋지긋하지 말아야 할텐데..
(창업일기는 계속..)
2009/10/19 14:45
제주도 다녀온 후 얼마 안있어 가게 계약을 위한 잔금을 치렀고 계약은 완료됐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7년간 상수동에 철을 공급하던 철물점이 못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빠져나갔고 그 빈 자리에 저렇게 섰다.
이제 상수동에 근사한 음식을 내놓을 차례.
좁은 공간이지만 욕심접고 가보자.
2009/10/12 07:54
지난 화요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가게 오픈을 앞두고 선결과제 하나는 와인.
까다로울 수 밖에 없는 이것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기에
마일리지를 긁어모아 티켓을 끊었다.
몇 차례 얘기했지만 작년 봄,
로마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소믈리에와의 만남은
우리에겐 색다른 경험이었고 돌아오면 언젠가 다시 보겠구나 내심 짐작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번 여행을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이다.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가게 오픈을 앞두고 선결과제 하나는 와인.
까다로울 수 밖에 없는 이것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기에
마일리지를 긁어모아 티켓을 끊었다.
몇 차례 얘기했지만 작년 봄,
로마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소믈리에와의 만남은
우리에겐 색다른 경험이었고 돌아오면 언젠가 다시 보겠구나 내심 짐작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번 여행을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지난 만남 이후의 회포를 풀고
동시에 와인과 관련한 비즈니스적 도움을 받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곁들여서 이왕 내려간 제주도인만큼 일정을 하루 더 늘려
올레길을 걸어보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국내선이라도 오랫만에 비행기보니 좋구나.
강양은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공짜로 끊었지만
김군은 포인트가 모자라 제주항공을 탔다.
헌데 프로펠러기일줄 알았더니 당당히 제트엔진이다.
저가항공, 그 가운데 제주항공은 어느새 일본노선에 이어 동남아 노선까지
확장했다는데 재주도 좋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김미경씨가 손수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와줬다.
작년, 베로나 공항에 도착해 우리를 마중나와 준 엘리자베따의 그 상황과 똑같다.
'마중' 만큼 진정스러운 환영 세레모니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보니 올 봄, 일본에서 게이코가 왔을 때는 우리가 마중을 나가 그녀를 환영했다.
김미경씨는 우리에게 대접할 점심을 신중히 고민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의 제안은 '고기국수'.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고기국수만큼 특별한 메뉴는 없는 것 같아서요"
소박한 비주얼.
탁도높은 육수에 굵은 중면, 고명으로 실파와 깨소금, 고기가 올랐다.
국물 한 술 떠마시니 오호.. 맛이 깊다.
돼지사골국물이 기본 베이스겠지만 잡내 하나 없고 '맛'을 내주는 감칠맛은 어디서 온건지 궁금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부분은 다름아닌 고기.
밝은 핑크빛에서 고기의 신선함이 전해지고
포실한 살점과 잡내 하나없이 깨끗한 비계 역시 꼬소한 맛이 수준급이다.
어쩜 이렇게 고기를 맛있게 삶아낼 수 있을까 싶지만
역시 좋은 재료가 맛의 90%를 결정짓는게 아닐까?
제주도의 돼지고기는 좋은 물과 공기의 영향으로 그 맛이 남다르다는 것이
여행중 만난 제주도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올래국수.
제주도 왔으니 고기국수 한번 먹고가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시라.
이곳 주소가 제주시 노형동?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주시의 유명 찜질방 '부림랜드' 혹은 '부림사우나' 바로 옆이다.
김미경씨와 와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비즈니스에 관한 의견도 나누고..
우리로선 모호했던 부분들이 좀 더 분명해졌고
김미경씨와는 향후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구매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화이트와인을 밀겠다는 우리의 기본 방침에 대해 김미경씨는
레드의 대중성을 들어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지만
홍대라는 트렌드의 특성에 기대를 걸어보겠단다.
사실 우리도 걱정이긴 하지만 장사하는 주인의 입맛이 화이트니 어쩔수 없다.
비즈니스에 관한 의견도 나누고..
우리로선 모호했던 부분들이 좀 더 분명해졌고
김미경씨와는 향후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구매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화이트와인을 밀겠다는 우리의 기본 방침에 대해 김미경씨는
레드의 대중성을 들어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지만
홍대라는 트렌드의 특성에 기대를 걸어보겠단다.
사실 우리도 걱정이긴 하지만 장사하는 주인의 입맛이 화이트니 어쩔수 없다.
어느덧 저녁.
지난 로마의 추억을 떠올리며 꺼내든 술은 다름아닌 네로 다볼라(Nero D'avola).
시칠리아에서 짜내는 이 술은 김미경씨와 로마의 숙소에서 처음만나 나눠마셨던 그 품종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음료라는 김미경씨의 칭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변주력을 지닌 와인은 그 자체로 즐겁다.

막걸리는 들이켜야 맛, 소주는 꺾어야 맛,
잔 돌리고 색 감상하고 코 박아 향 맡고..
와인은 또한 그래야 맛이다.

마침 와인샾 바로 옆이 파스타 가게라서 파스타 두 접시를 주문해 먹었다.
가격이 모두 1만원 아래인데 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서울의 가게들에 견줘 부족함이 한치도 없다.
특히 계란 노른자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손수 얹어주는
까르보나라는 무늬만 까르보나라인 다른집 파스타들에 비해 재료의 솔직함이 좋다.
손 크게 썬 양파는 빼는게 좋을 듯.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음료라는 김미경씨의 칭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변주력을 지닌 와인은 그 자체로 즐겁다.
막걸리는 들이켜야 맛, 소주는 꺾어야 맛,
잔 돌리고 색 감상하고 코 박아 향 맡고..
와인은 또한 그래야 맛이다.
마침 와인샾 바로 옆이 파스타 가게라서 파스타 두 접시를 주문해 먹었다.
가격이 모두 1만원 아래인데 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서울의 가게들에 견줘 부족함이 한치도 없다.
특히 계란 노른자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손수 얹어주는
까르보나라는 무늬만 까르보나라인 다른집 파스타들에 비해 재료의 솔직함이 좋다.
손 크게 썬 양파는 빼는게 좋을 듯.
서울의 큰 프랜차이즈에서 다년간 요리를 하다가
몽땅 정리하고 가족들과 제주도로 내려와 파스타 가게를 열었다는 젊은 오너쉐프는
그러나 신통치 못한 매출에 근심이 많다.
누구나 꿈꾸는 제주도의 로망을 직접 실천한 모험이
이래저래 근심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여간 안타까운게 아니다.
늦은 저녁, 매일같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멤버'들과 뒤섞여
아주 가뿐하게 4병을 비워냈다.
화이트 1병에 레드 3병.
제각각 술이 가진 장기가 있더라도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알콜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기 바쿠스가 이미 오래전에 증명하지 않았던가?
알콜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기 바쿠스가 이미 오래전에 증명하지 않았던가?


